사도 무함맏께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기 전의 생활

MUFTY. DR. ABDUL WAHAB ZAHID
무프티 : 압둘 와합 자히드 박사
한국 이슬람 선교사
카라치 파룩 대학 이슬람대학원 원장

2장

1. 코키리 사건

2. 사도무함맏의 생일

3. 사도무함맏의 수유기

4. 사도무함맏의 유모 할리마

5. 가슴을 열었던 기적(사도 무함맏의 폐수술)

6. 사도무함맏의 어머니 아미나와의 생활

7. 사도무함맏의 조부 압둘뭇딸립과의 생활

8. 사도무함맏의 삼촌 아부딸립과의 생활

9. 사도무함맏의 청년기 생활

10.사도무함맏의 카디자와의 결혼

11.사도무함맏의 자녀들

12.하나님의 사도들은 왜 일부다처 였는가

13.힐풀 알 푸두울

14.카아바 재건립

15.사도무함맏의 명상과 은둔생활

16.사도무함맏에게 계시의 시작과 사도로서의 임명  

(1)코끼리 사건

알라의 사도 무함맏(그분께 평화가)의 태어난 역사적인 일부터 시작해야 하나 여기서는 그분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무함맏의 탄생과 중요한 연관이 있는 코끼리 사건부터 언급하겠다. 그리고 알라의 집과 알라의 최후의 사도 무함맏을 따르는 이들의 구심점을 보호하기 위한 알라의 권능을 언급하겠다.

당시의 기적은 이브라힘(아브라함)과 이스마일께서 건립한 카바가 알라의 성스러운 집이며 그곳의 모든 것들이 보호받으며 그곳을 해하려는 모든 이들이 저주받는 다는 것을 일러준다.

메카는 알라(하나님)로부터 계시를 받는 장이며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신 무함맏이 태어난 곳이고 지고하신 알라를 경배하는 믿는 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구심점이며 알라의 완성된 율법의 집이다.

코끼리의 사건은 그 속에 몇 가지의 중요한 관점이 있다.

이슬람 이전에 에티오피아 왕이 아르야뜨의 지휘 아래 거대한 군대를 예멘으로 보내 나즈란 백성들을 돕도록 하였다. 그래서 아르야뜨의 군대가 예멘으로가 예멘을 정벌하고 단나와쓰 왕을 죽인 후 그 자신이 그곳의 왕이 되었다.

그때가 서기 527년이 또는 529년이라 전한다. 그후 아르야뜨는 그곳에서 폭정을 행하였다.

그래서 당시 그와 함께 에티오피아에서 정벌에 참여했던 장군들이 반기를 들었고 그중 아브라하 알 아쉬룸 하바시가 아르야뜨를 공개 결투에서 죽였다.

그는 예멘의 에티오피아 군대에서 우위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그를 예멘의 신랑이라 불렀다. 그때가 서기531년이었으며 그 또한 이전의 왕들과는 별다를 바 없는 폭군이며 자만과 교만이 가득찬 왕이었다. 예멘의 신랑이라 불리는 그의 별명에 그는 자신이 아랍의 왕이 된 줄로 착각하였으며 그 자신만이 아랍인의 운명을 결정짓고 그들의 경배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어느 누구도 그의 일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메카를 공격하여 메카를 포함한 아라비아 반도의 모든 지역을 그의 통치 아래 두고자 하였다. 아랍인들이 신성시하고 순례하는 이브라힘과 이스마일이 건립한 알라의 신성한 집 카아바를 그의 통치 아래 두고자 했으며 그것으로 그는 아라비아 반도의 주인임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시리아와 접촉하여 같은 기독교를 믿는 이들은 서로 동맹을 맺고 그들의 승리를 확신했으며 카아바를 예멘으로 옮겨 갈 수 있으며 정치적. 경제적 많은 이익을 얻으리라 믿었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카아바가 이브라힘의 주님이신 알라의 집이며 알라께 경배하는 장소임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매년 메카로 순례를 와서 이브라힘과 이스마일의 주님이신 알라에 대한 신앙심을 돈독히 하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상업적 시장이 생겼으며 문화적 모임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카아바가 없이 이러한 사회가 형성이 된다는 것은 이 땅위에서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적인 구심점을 예멘으로 옮길 생각을 했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카아바와 비슷한 것을 짓고 아름답게 장식하면 아랍인들이 그것의 아름다움과 발전된 기술과 건축에 감탄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와 비슷한 교회를 건축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바닥을 마불 대리석으로 장식하고 벽에 색을 칠하고 대리석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아랍인들이 그쪽으로 메카의 카아바를 대신해서 매년 순례를 오도록 하였고 아랍인들은 이것을 들었고 무척 화를 냈다.

카나나부족의 한 사람이 가서 그것을 더럽혔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탈출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아브라하 알 아쉬룸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매우 화가 나서 그는 즉시 메카의 카아바를 파괴하기 전까지 그의 왕좌에 앉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그리고 코끼리를 앞세운 거대한 군대를 준비하고 왕궁 옆에 병영을 만들어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메카로 향했다. 아라바인들은 그 소식을 듣고 그들을 주시하고 대응에 나섰다.

당시 그의 의도를 막고 전쟁을 한 것은 예멘 백성들이었다. 처음에 두나파린을 선두로 한 많은 예멘 백성들과의 전쟁에서는 아브라함이 승리하였다. 그리고 두나파린은 포로로 잡혔고 아브라하왕은 두나파린을 처행하려 할 때 두나파린이 말하기를 오! 왕이시여 나를 죽이지 마시오.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 두면 죽이는 것보다 더 좋을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하왕은 그를 살려주었다. 당시 아브라하왕은 매우 영리한 자였다. 그리고 아브라하왕은 그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메카로 향했으며 쿠스암 부족의 땅에 당도하였고 아브라하왕을 거역하는 나필 이븐 하비브 알 쿠스아미가 이끄는 쿠스아미 부족과 나히쓰 두 부족과 전쟁을 하여 아브라하가 승리하고 나필 이븐 하비브 알 쿠스아미를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 할 때 나필이 말하기를 : 이 두부족은 나의 손에 있으며 당신께 복종할테니 살려 주십시오. 그래서 그는 나필을 살려주고 그와 같이 동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꾸레이쉬 부족은 거의 메카에 거주하였으며 수적으로 군사적으로 상당히 열세였다. 당시 메카의 통치자는 하심의 아들 압둘뭇딸립이었다 꾸레이쉬 부족들은 모여서 이 큰 문제를 상의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이 집은 알라의 집이다. 이곳은 보호받는 곳이다. 그리고 그는 꾸레이쉬 부족들이 메카를 떠나 산 위로 올라가도록 명령하였다.

그들은 이브라힘의 주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알라를 믿고 그분이 그분의 집을 보호하는 능력을 믿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당시 압둘뭇딸립의 생애를 통하여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의 명령에 따랐다.

아브라하가 메카 근교에 도착했고 그곳에 진영을 쳤다. 그리고 압둘뭇딸립의 낙타 2백마리를 죽였다.

아브라하는 후나똬 알 후마이리를 메카로 보내 메카의 지도자를 청했다. 후나똬가 메카에 도착해서 메카의 지도자를 묻자 사람들은 압둘 뭇딸립이라고 했다. 그가 압둘뭇딸립에게 말하기를 : 진실로 왕께서는 당신들과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이 집을 파괴하기 위해서 왔을 뿐이오.

압둘 뭇딸립이 대답하기를 : 우리는 이 신성한 알라의 집에 어떠한 권리도 없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나서 압둘뭇딸립은 후나똬와 같이 아브라하의 진영으로 갔다.

아브라하의 부관이 아브라하에게 말하기를 : 왕이시여! 여기 꾸레이쉬 부족의 지도자가 문 앞에 와서 당신을 뵙기를 청합니다. 그가 바로 메카의 지도자이며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산 정상에 음식을 놔두어 짐승들에게도 베푸는 사람입니다.

그때 당시 압둘뭇딸립과 아랍 부족들의 부족장들이 같이 있었다. 당시 그가 가장 출중한 사람이었다 아브라하가 그를 봤을 때 그는 압둘 뭇딸립의 출중한 인물됨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앉고 압둘뭇딸립을 그의 옆에 앉혔다. 그리고 통역관에게 말하기를 : 물어라.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통역관이 그렇게 말하자, 압둘 뭇딸립은 말하기를 : 원하는 것은 당신이 해친 200마리의 낙타를 돌려주시오.

아브라하가 말하기를 : 나는 당신을 처음 봤을 때 당신의 출중한 외모에 반했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낙타를 변상해 달라 하고 당신들의 종교의 집인 카아바를 포기하는 것을 보고 당신을 포기했다. 나는 카아바를 파괴하기 위하여 이곳에 왔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필요 없다.

압둘 뭇딸립이 말하기를 : 나는 낙타의 주인이고 카아바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 분이 당신으로부터카아바를 보호할 것이다.

아브라하가 말하기를 : 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카아바를 보호하거나 파괴할 권리가 없다.

압둘 뭇딸립이 말하기를 : 당신과 그 분(하나님)만이

카아바를 보호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누가 카아바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 보게 될 것이오.

아브라하는 압둘 뭇딸립에게 낙타를 돌려주었고 그는 메카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메카를 떠나 산으로 피신하도록 명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한 사람을 데리고 카아바로 가서 알라께 승리할 수 있도록 기원하였다.

아브라하는 메카로 들어갈 준비를 다 마치고 가장 큰 코끼리를 앞세웠다. 가장 큰 코끼리의 이름은 마흐무드라 했다. (아랍인들은 코끼리를 마흐무드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메카로 쳐들어 가는 것을 거부한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아브라하가 메카로 진격할 것을 명했으나 코끼리들이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아 채찍으로 때렸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예멘으로 코끼리들이 돌아갔다. 야흐룰이 일어나 말하기를, 저곳에는 알라의 승리가 있다. 그리고 압둘 뭇딸립의 말이 그것을 증명하였다(카아바는 주인이 따로 있다. 그가 막을 것이다)

알라께서는 바다에서 새들을 보냈고 각 새들마다 세 개의 돌들을 물고 와 아브라하의 군대를 공격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온전한 자가 한 명도 없었으며 그들이 왔던 길로 모두 도주 하였고 도중에 많은 수가 죽었다.

아브라하는 돌에 맞아 부상을 입고 그의 부하들이 그를 예멘으로 이송하였지만 산 아래에 도착해서 그의 사악한 죽음의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예멘의 왕좌는 그의 아들 야그쑴이 이었으며 그때가 세기 570-571년 이었으며 히즈라전 53년이다. 그후 에티오피아의 군대는 예멘에서 오래 머물러 있지 못했다. 싸이프 븐 자이잔이라는 왕의 주도하에 예멘 백성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에티오피아 왕을 권좌에서 끌어내 처단하였다. 그후 압둘 뭇딸립과 일련의 사신들이 그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예멘에 갔었다.

위의 이야기를 꾸란의 코끼리 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대 주님께서 코끼리의 무리를 어떻게 하셨는지 그 소식이 이르지 아니했느뇨? 그들의 음모를 파멸시켜 버리지 아니 했는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 떼를 보내어 모래와 흙으로 된 돌멩이들을 던지셨나니 그들은 다 갉아 먹어 버린 마른 잎과도 같았도다] 필장 1-5아야(절)

그 사건이 있을 때 알라의 사도 무함맏께서 태어나셨다.

  (2) 사도이신 무함맏의 탄생

알라(하나님)의 사도 예수 이후 6세기가 지난 후에 알라(하나니)의 사도이신 무함맏께서 탄생하셨다.

무함맏께서는 서기 570-571년에 태어나셨으며 히즈라 53년 전이다. 그때가 3월 12일 월요일이었으며 압둘 라흐만 이븐 아우피의 어머니 손에 의해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분의 아버지는 압둘라이며 어머니는 아미나이다.  

(3) 무함맏 사도님의 수유기

무함맏 사도님께 젖을 먹였던 분들은 다음과 같으며 그들은 무함맏의 어머니들이시다

1)처음 무함맏에게 젖을 먹였던 분은 친어머니이신 와합 알 주흐리야의 딸 아미나이다

2)그리고 나서 싸우비야 알 아슬라미야이고

3)다음에는 아이만 바라카트 알 하바시야이고

4)야클루드의 딸 아티

5)아티카 빈드 힐랄 이븐 날리흐

6)아티카 빈드 파흐르

7)아티카 빈드 알 아우까스

8)할리마 알 싸으디야 순이다    

    (4) 사도무함맏의 유모 할리마

상기의 이름들이 알라의 사도 무함맏께 젖을 먹였던 분들이며 그들의 이름들은 알라의 사도께 젖을 먹인 것으로 인하여 고귀해졌다.

통상적으로 아랍에서는 아들을 낳게 되면 수유를 위하여 지방으로 보내 그곳의 언어와 풍습을 배우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육체를 단련하도록 하였다. 알라께서는 알라의 최후의 사도이신 무함맏의 수유를 할리마 알 싸으디야에게 받도록 하였다.

할리마는 그의 남편과 싸으디 부족의 몇몇 사람들과 수유를 하기 위하여 메카를 떠났다. 같은 해에 알라의 사도 무함맏께서 태어났다.

그녀가 말하기를 : 그 때가 매우 궁핍한 해였으며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었다. 나는 당나귀를 타고 커다란 낙타를 데리고 나섰다. 진실로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굶주림의 고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나마 우리에게 있던 차를 마시기 위해 모였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당나귀를 타고 오랫동안 갔었다. 그리고 서로 분산되어 메카에서 수유할 아이를 찾았다.

그녀에게는 알라의 사도 외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는 무함맏이 유복자라는 것을 듣자 매우 마음이 내키지 않아 했다. 왜냐하면 아이의 아버지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얘기하기를 유복자는 그의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나 나 이외에 다른 여자가 그의 수유를 위해 남지 않았다.

`진실로 나는 이 유복자를 두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소. 이 아이를 내가 맡겠소.' 라고 남편에게 말하자, `당신에게 좋은 일이오. 알라께서 아마도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실 것이오.'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를 데리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내가 그를 나의 방에 데리고 들어와 젖을 먹였으며 충분히 젖을 먹은 후 잠이 들었다. 우리는 그가 잠들 때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으며 굶주림과 갈증으로 허기졌기 때문에 나의 남편이 낙타에게 가서 젖을 짜가지고 와 나와 같이 마시고 편안한 잠을 잤다.  

그녀가 말하기를 : 우리 이웃들이 말하기를, 할리마여! 정말로 당신은 축복 받은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녀가 말하기를 : 진실로 나도 그것을 바란다. 다른 사람들의 당나귀가 앞지를 수 없었다.

이웃 사람들이 말하기를 : 아비 두 아이브의 딸이여 이 당나귀가 당신이 타고 왔던 당나귀가 맞는가?

그녀가 말하기를 : 맞다.

그들이 말하기를 : 진실로 그에게 관계된 것이다.

훌라이마가 말하기를 : 그리고 나서 바니싸으디 땅에서 우리의 집으로 앞장서서 갔다. 이처럼 메마른 땅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당시 나의 양이 나와 같이 갈 때 우리에게 라반을 주어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마셨었다. 그만큼 많은 라반을 줄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양들에게도 라반을 나누어 주었다.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알라께서 축복을 주셨고, 또한 그가 아이 티를 벗어날 수년 동안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주셨다. 알라께서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신 무함맏을 어릴 적부터 보살펴 주셨으며 축복과 은총을 베푸셨다.  

(5). 가슴을 열었던 기적(사도 무함맏의 폐수술)

할리마가 무함맏을 데리고 메카의 바니싸으디로 돌아왔다. 메카로 돌아올 때 무함맏에게는 무함맏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갖기 위해 같은 유모 밑에서 자랐던 형제나 친구를 동행하지 않았다.

무함맏의 나이가 4세에 이르렀을 때 부카리 하디스에 언급된 것처럼 그의 가슴을 갈라 열었던 일이 있었다.

부카리 하디스에 언급하기를 : 아나스가 전한다. 아이들과 놀고 있는 알라(하나님)의 사도께 천사 지브리엘이 내려왔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가서 눞�?다음 심장이 있는 가슴을 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응혈 덩어리를 꺼냈다. 그리고 나서 말하기를, 이것이 사탄의 몫이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금으로 된 양동이에 담긴 잠잠 물로 씻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넣어 주었다. 아이들이 이것을 보고 그들의 유모에게 가서 무함맏이 살해 당했다고 말했고 우리가 그를 보니 흠뻑 젖어 있었다

할리마가 말하기를 : 우리는 그를 데리고 숨었으며 그의 아버지(그녀의 남편)가 말하기를 : 이렇게 불행이 닥치는 것을 나는 두려워 했었다. 또다시 불행이 오기 전에 그를 그의 가족에게 돌려주어라. 그래서 우리는 그를 데리고 그의 어머니께 갔다,

그녀가 말하기를 : 무슨 일이냐? 나는 이 아이가 당신들과 같이 지내기를 원했는데

내가 말하기를 : 진실로 그는 다 컸다. 그리고 그에게 생길 일이 두렵고 해서 그를 당신께 데리고 왔다. 그녀가 말하기를 : 이것이 무슨 일이냐? 당신의 얘기를 믿도록 해주시오.

훌라이마가 말하기를 : 그녀는 내가 그의 얘기를 알려줄 때까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말하기를 : 그에게 사탄이 들었을까 두렵나? 진실로 사탄은 그에게 가까이 할 수 없다. 나의 아들은 특별한 아이다. 내가 그를 임신했을 때, 진실로 그는 무겁지도 않았으며, 또한 낳을 때, 힘들지도 않았었다. 나는 그를 낳았고 그를 땅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께 인도하도록 그의 머리를 하늘로 향했고 ..... 따라서 걱정하지 마시오.  

가슴을 열었던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일이 사도님 생애에 두 번 일어났다  

1)첫 번째는 먼저 언급했던 것처럼 하디스 솨히흐 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알 다리미와 아흐맏이 전하 고 알 하킴이 올바르다는 것을 입증하였으며 이맘 알 다하비가 그것에 동의했다.  

2)두 번째는 계시를 받으신 이후이며 승천하시기 이전이다. 당시 알라의 사도님의 연세는 50세였으며 이것의 전승은 올바르고 근거 있는 것이다.

이맘 알 니사이가 전하고 이맘 알 부카리가 그의 하디쓰에서 전하며 이맘 무슬림이 말리크이븐 솨드 솨아가 전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 알라의 사도께서 승천하시던 날 밤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 하였다. “내가 비몽 사몽간에 돌 위에 누워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와서 내 젖꼭지와 겨드랑이 사이 를 갈랐다. 그리고 내 심장을 꺼낸 후 신앙으로 가 득한 금동이를 가져와 내 심장을 씻은 후 다시 제 자리에 넣었다.”

(6) 무함맏의 어머니 아미나와의 생활

그가 할리마 알 싸으디야에게서 4년을 보낸 후 그의 어머니인 와합 알 주흐리야의 딸 아미나에게로 돌아왔다. 그녀의 곁에서 살면서 그는 그녀의 꾸레이쉬 부족의 전통에 따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에게는 외동아들이었고 그의 나이가 6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메디나에 있는 그녀의 남편 압둘라의 무덤과 그의 사촌인 알 나자르 사람들을 방문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녀의 아들 무함맏과 여종 움무 아이만과 같이 동행했으며 외동아들인 유복자 무함맏에게 그의 아버지를 알려주려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알 나자르 사람들에게 무함맏을 알리려 했다. 그녀가 메디나에 도착하고 그녀의 남편 무덤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나서 메카로 돌아오는 길을 나섰는데, 돌아오는 첫머리에 그녀는 심한 병에 걸려 알 아부와이라는 장소에서 사망하였으며, 그때가 서기 576년이었으며 무함맏이 탄생한지 6년이 지난 해였다. 이래서 무함맏은 고아가 되는 신세가 되었고 여종 움무아이만이 그를 데리고 메카에 있는 그의 조부인 압둘 뭇딸립의 집으로 행했다. 메카에 도착했을 때까지 무함맏은 아무일 없었고 이맘 알 주흐리가 아쓰마 빈드 라흠이 전하는 것을 말하기를 :

그녀가 말하기를, 알라의 예언자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목격하였으며 무함맏께서는 여섯 살밖에 안된 어린 아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하기를,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죽고, 모든 새 것은 바래진다. 나는 죽지만 나의 기억은 남고 선행을 남겼으며 청결하게 태어났던 것이며 그리고 죽는 것이다.'

  (7) 무함맏의 조부 압둘 뭇딸립과의 생활

알라께서는 그분의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신 무함맏께서 고아가 되게 하셨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잃고 아버지의 관심도 받지 못했으며 그에 대한 알라의 관심만이 있었다. 그는 예언자와 사도들의 교육을 받았으며 알라께서는 그를 위해 관대하고 자비롭고, 애정이 넘치며 또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고아들을 위한 사랑을 베푸셨다. 당시 무함맏께서는 태어나기 3개월 전에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아버지 모습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까지 잃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알라께서 정해 준 운명이었으며 메카의 지도자이신 그의 조부 압둘 뭇 딸립에게 교육받고 키워지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당시 그의 조부는 100세에 가까운 나이였다. 그는 매우 자비롭고 애정이 많았으며 그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지도력과 학식이 있었으며 이러한 모든 것들을 그의 손자 무함맏께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무함맏을 양육하였다. 알라의 보살핌과 도움으로 그는 순탄하게 자랐고 그의 조부는 그에게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압둘 뭇딸립은 그를 매우 사랑했으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이상으로 사랑했다. 그에게 어렸을 적부터 올바를 판단과 남자로서의 예절 등을 가르쳤고 많은 아이들이 그를 따랐다.

그는 자나깨나 어디를 가거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항상 그의 조부 뒤를 따라 다녔다.

당시 압둘 뭇딸립의 침대에는 그 누구도 앉을 수 없었으나 그가 일이 있어 외출할 때는 무함맏이 그곳에 앉곤 했다. 당시 그의 삼촌들은 압둘 뭇딸립에 대한 존경심으로 무함맏이 그곳에 앉지 못하도록 했지만 압둘 뭇딸립이 그들을 막았다. 그리고 무함맏이 원하는 때에 아무때나 앉을 수 있도록 하고 구속하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당시 압둘 뭇 딸립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 내 아들을 불러라. 진실로 그에게는 특별한 곳이 있다. 그리고 나서 침대에 앉아서 무함맏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러한 것 때문에 꾸레이쉬 부족장들은 무함맏에 대하여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하였다.

당시 무함맏께서는 어렸었지만 말과 행동이 사리에 맞았다. 그가 말하면 마치 훌륭한 판사가 말하는 것처럼 조리 있었다. 그가 회의석 상에 앉아 있으면 마치 어른처럼 보였으며, 결코 어린 아이들의 행동을 그에게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를 좋아했고 존경하였으며 압둘 뭇딸립 또한 그를 보호하였고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이러한 것들은 바로 알라께서 영감을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그의 아들 아부 딸립에게 그를 돌볼 것을 유언하였다.

아부 딸립은 무함맏의 부모 양쪽의 형제가 되는 사람이다. 압둘 뭇딸립은 120세가 되던 해에 죽었으며 무함맏은 그의 조부 압둘 뭇딸립의 손에서 2년을 보냈었고 그 다음에 그의 삼촌인 아부 딸립의 집으로 옮겼다. 당시 무함맏의 나이는 8세였다.

예언자 무함맏의 조부께서는 무함맏을 애정과 평화로 손자를 대했으며 어렸을 적부터 그의 성품을 알고 계셨다. 그는 언제나 알라의 보살핌이 그의 손자에게 깃들도록 기원했으며 압둘 뭇딸립은 그의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름을 무함맏이라 불렸다. 이러한 것이 알라로부터 내려진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꾸레이쉬 부족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이름을 생소하게 생각해서 말하기를 : 조상들의 이름들과 생소하지 않느냐?

그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 나는 그가 하늘에 계신 알라를 찬미하고 이 땅위의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그분을 찬미하는 것을 원한다.

압둘 뭇딸립이 세상을 뜨자 슬픔이 무함맏을 감싸고 무함맏의 가슴에 깊은 아픔을 주었다. 그는 왜 알라께서 이런 운명을 주셨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이러한 운명을 겪으면서 알라의 사도와 예언자로서 알라의 배려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함맏은 그의 조부의 집에서 그의 삼촌 아부딸립의 집으로 이주했으며 그와 함께 살게 되었다. 당시 아부딸립은 무함맏을 매우 아꼈지만 문자를 가르치는 것을 소홀히 하였었다.

  (8) 사도 무함맏의 삼촌 아부딸립과의 생활.

아부딸립은 무함맏의 친삼촌이다. 그야 말로 압둘 뭇딸립의 아들중 집안을 가장 많이 부양하고 이끌어 나갔던 사람이다. 그는 매우 관대한 사람이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성품이 고귀하고 또한 꾸레이쉬부족의 지도자중 한 사람이다.

압둘 뭇딸립은 그의 손자인 무함맏을 그에게 맡겼었다. 그래서 그는 무함맏에 무척 관심을 갖고 돌봐줬다. 그리고 무함맏의 성품을 보고 매우 사랑하였으며 그의 또래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매우 좋은 행동들을 보고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를 특별히 돌봐 주었다. 그러나 그는 교육을 소홀히 해서 당시 다른 귀족 집안 아이들처럼 선생에게 보내지 않았었다. 그리고 아부딸립은 손님이 오는 것을 좋아했다. 손님을 접대하고 그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을 즐겨해서 무함맏은 그의 삼촌 집에서 사촌 형제들과 같이 차별 없이 자랐다.

그러나 말과 행동에서 그들과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당시 아부딸립은 무함맏의 행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나는 그를 밤이든 낮이든 결코 떨어 뜨리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나는 그에게서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그에게는 놀랍게도 매우 자상하고 향기롭고 그의 언행에서 매우 훌륭한 점들을 느꼈었다. 며칠 전 밤에 나는 그가 침대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를 불렀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예, 삼촌!” 그는 집의 예배실에 있었다.

당시 우리는 먹고 마실 때 찬미를 드리지 않았지만 그는 `유일하신 알라의 이름으로' 라고 말하고 먹기 시작했다. 그가 알라께 찬미를 드린 후 그는 매우 그것에 감사했으며, 그가 거짓말하거나 웃거나 무지하거나 아이들이 노는 것에 같이 놀거나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의 삼촌 아부딸립이 보살펴 줄 때 어린 무함맏의 행동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겨우 아홉 살에 지나지 않았으며 어렸을 적 부터 지고하신 주님의 보살핌을 받았었다. 그는 당시 그의 삼촌이 말한 것처럼 집의 예배실에서 알라께 경배 드리고 알라께 감사드리고 모든 것을 알라께 찬미하였다.

이븐 아싸키 잘하마 이븐 아라파뜨가 전하는 것을 말하기를 : 메카에 갔었는데 그들은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꾸레이쉬 부족이 말하기를 : 오 아부딸립이여! 와디가 메마르고 기근이 들었다. 기근을 빨리 없애다오! 그래서 아부딸립은 구름을 부르는 한 사내와 같이 나섰다. 아부딸립은 카아바에 등을 대고 섰다. 그 사내는 그의 손가락을 낮추고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여기 저기서 구름이 나타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하며 물이 차 오르며 땅이 풍요로와 졌다.  

(9) 사도 무함맏의 청년기 생활

진실로 알라(하나님)께서는 좋으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좋은 것만 받아 들이시며 모든 사도들에게 좋은 음식들만 먹도록 명령하셨고 선행을 베풀도록 명령하셨다. 그래서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들 자신들이 일해서 얻은 것들을 먹었다. 예언자의 아버지인 이브라힘(그분께 평화가)께서 양을 치셨으면 모세(그분께 평화가)께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무함맏(그분께 평화가)께서도 청결한 음식을 얻기 위해 직접 양을 치셨고 그의 육신에서는 할랄(허용된 것)이 넘쳤다. 하디쓰에서 언급하기를 그분(그분께 평화가)께서는 초창기에 양을 치셨으며 그 이후에 상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디쓰에서 언급되기를 : 알라의 사도 무함맏께서는 메카 사람들을 위하여 양을 치셨다.

이븐 알아시르가 전하기를 알라의 사도께서 말씀하셨다. : 나는 자힐리야(무지) 사람들의 그 어떠한 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두 번 시도했지만 모두 알라께서 나와 그들 사이를 막아 주셨다. 그 후 나는 그들이 나에게 감복했을 때까지 결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어느 날 저녁 메카의 높은 지대에서 나와 같이 한 사람이 양을 돌보고 있었다. 내가 양들을 돌보며 메카로 들어갈 즈음 젊은 청년들이 하는 농담을 주고 받을 때 그가 말했다. “시도해 봐라!” 그래서 나는 메카의 첫 번째 집에 당도할 때까지 떠나와 버렸고 그때 무슨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 소리가 무엇이냐? 사람들이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가 결혼한 것이다. 그래서 그 곳에 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데, 알라께서 나의 귀를 막아 잠이 들었으며,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서 다음날 저녁 메카에 들어갔는데 전 날과 같은 일이 벌어졌지만 나는 그 못된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것이 알라께서 보호하고 관심을 가져 주시는 은총 때문이다.

그리고 무함맏께서는 쿠와일라드의 딸 카디자의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븐 알아시르가 말하기를, 당시 카디자는 재산이 많은 귀족의 여인으로 남자들에게 돈을 대주고 사업을 시켜서 수익금을 서로 분배하였다.(이것이 이슬람 규범상 동업에 해당된다.

그것은 두 사람이 동업하여 한 사람은 돈을 대고 다른 한 사람은 일을 하여 그 수익금을 서로 계약했던 비율로 분배하는 것이다.)

알라의 사도님의 성실하고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신의를 알고 그의 좋은 성품과 다른 아랍인들이 그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부르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무함맏께 사람을 보내 그녀가 돈을 대고 시리아의 사업에 동업을 제의했으며 다른 누구에게보다도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그래서 무함맏께서 그 제의를 수락했으며 그녀의 비서와 함께 대상을 떠났다.

그는 시리아로의 장사를 결코 혼자 떠나지 않고 메카 상인 무리 즉 대상들과 같이 떠났다.

(10) 사도 무함맏의 카디자와의 결혼

무함맏께서는 카디자와 같이 사업에 전념하였고 그녀는 그분이 신의가 깊고 믿을 수 있는 분이며, 그녀에게 적합한 남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40세의 나이가 되고 무함맏께서 25세의 나이 즉 두사람이 15년 차이가 났었다. 그녀는 꾸레이쉬 부족 중 귀족 출신이며 매우 전통있고 존경받는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결혼 경력이 있었는데 지라라 알 따미미의 아들 아부 할라와 결혼을 했었고, 그후 아이즈 알 마크주미의 아들 아티끄와 결혼을 해서 힌디라는 딸을 낳았었다. 그녀의 남편 아티끄가 죽은 후 많은 유명 인사들이 그녀에게 청혼을 했었지만 그녀는 거절했었고 오로지 무함맏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주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어 그녀의 친구 나피싸를 보내 중매를 서도록 했고, 그녀가 카디자의 생각을 무함맏에게 얘기해 주고 중매를 성사시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함맏의 삼촌 아부딸립이 그녀에게 무함맏을 위해 청혼을 했다. “ 진실로 무함맏은 다른 꾸레이쉬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청년이다. 그러나 재산이 없다는 것이 흠이지만 재물은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이니 청혼을 받아 주시오. ” 카디자의 삼촌이 청혼을 받아 들여 결혼에 동의를 했다. 그래서 알라의 사도께서는 그녀에게 지참금을 주고 결혼을 해서 가장 훌륭한 가정을 이루었고 카디자 또한 그를 성심 성의를 다하여 내조하였다

그녀는 무함맏께서 다와(선교)를 하는데 가장 큰 조력자였으며 여자들 중 가장 먼저 그를 믿은 사람이다. 그녀는 마르얌 알 까브뛰야에게서 태어난 무함맏의 아들 이브라힘(아브라함)을 제외한 모든 아이를 낳았었다. 카디자는 무함맏의 첫 번째 부인이었으며 그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지 않았었다.  

(11) 무함맏 사도님의 자녀들

그분께는 세 아들과 네 딸들이 있었다.

1) 까심 : 그는 장남이며 아부 알 까심이라 불렸지만 하루밖에 살지 못하고 죽었다.

2) 압둘라 : 그는 따입과 똬히르라고 불렸다. 한편으로는 따입 똬히르는 카디자가 낳은 사도님의 두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압둘라는 어렸 을 때 사망했다.

3) 이브라힘 : 메디나에서 태어나서 3년밖에 살지 못했다. 그는 알라의 사도님 보다 3개월 먼저 일식이 있던 날 메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마르얌 알 까브뛰야 알 마스리야 이다.  

그분의 딸들은....

1) 자이납 : 그녀는 카디자의 조카인 아부 알 아시 이븐 알라비으와 결혼했고 아부알아시는 오마르가 칼리펴(이슬람 국가 대장)로 있을 때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알리를 낳았는데 그는 젊어서 일찍 죽었다. 그리고 우마마를 낳았었는데 그녀는 파띠마가 죽은 후 알리븐 아부딸립과 결혼을 했었고 자식이 없었다. 알리븐 아부딸립이 죽자 그녀는 알 무기라 이븐 누우팔 이븐 알 하리스븐 압둘 뭇딸립과 결혼을 했었다. 그와의 결혼 생활도중 사망하였다.

2) 루꺼야 : 카디자의 딸이며 오스만 이븐 압판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사도님 생전에 바드르 전쟁 3일 후에 죽었다. 그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7세가 되던 해에 죽었다.

3) 파띠마 : 그녀가 딸들 중 가장 많은 자손을 낳았다.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6개월 후에 죽었다. 그녀는 사촌 알리븐아부딸립과 결혼해서 하산과 후세인 두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하산과 후세인의 자손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어렸을 때 죽었지만 무흐신이라는 아들도 있었다.

또한 파띠마는 딸 자이납과 움무 쿨숨을 낳았으며 자이납은 압둘라 이븐 자으파르 이븐 아부딸립과 결혼해서 알리를 낳았다.

그리고 움무 쿨숨은 오마르 이븐 알 카땁과 결혼하였다. 그녀의 아버지인 알리 이븐 아부딸립이 그에게 청혼을 해서 결혼하게 되었던 것이다.

4) 움무 쿨숨 : 카디자의 딸이며 막내였다. 그녀의 사촌인 우트봐 이븐 아부라함이 그녀의 아버지인 사도님께 청혼을 하였으나 파기되고 그녀의 언니인 라끼야가 죽은 후 오스만 이븐 압판과 결혼하였다.

  (12) 하나님 사도들은 왜 일부다처 였는가.

일부다처제로부터 얻어지는 교훈, 결혼은 신이 정해 주신것이다. 창조주께서는 피조물들을 남과 여로 구분지어 창조하셨다. 그리고 남녀가 만나는 것을 땅 위에서 물질적 삶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몇몇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천성을 거부하였으며 그들 중에서 철학자 마니는 이세상의 물질적 타락과 악을 줄이기 위하여 독신생활을 주장하였으며 빛이 어둠과 섞이는 것은 사악한 것이니 어둠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기때문에 결혼을 금하고 종족보존을 끊어 빛을 보호하려하였다.

그리고 철학자들 중에는 조건없이 결혼을 허락하고 권장한 학자들도 있었다. 이 주장을 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A.D 487년에 태어난 무즈닥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들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차별없이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

어떤 자가 다른 사람을 지키고 보호하기를 갈망한다면 샤흐르싸타니가 말하기를 무즈닥은 그 여자에게 허락하고 재물을 갖는 것을 허용했으며 사람들이 물과 불과 목초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는 것처럼 협력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재의 기독교 학자들은 올바르고 정당한 가족을 형성하기 위한 결론이 없어도 남녀가 만나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고 또한 여자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허용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지고하신 알라의 법에 명확히 위배되는 것이며 모든 예언자와 사도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지고하신 알라께서는 인간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으며 결코 정해진 법칙이 없이 혼돈 속에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올바르고 숭고한 법칙을 정해 주셔서 남녀가 모두 똑같이 지켜갈 수 있도록 하셨다.

남녀가 만나는 것 또한 지고하신 알라께서 정해 주신 법을 준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알라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허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알라께서는 그분의 사도들을 통해서 올바른 결혼을 보여주었고 알라께서 결혼을 원치 않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만을 제외한 모든 사도와 예언자들이 결혼을 하였다. 예수께서는 알라의 길에서 다와에 여념이 없었으며 그의 생애 또한 그의 적인 유태인들의 핍박과 억압으로 가득찼으며 지상에서의 그의 생애 또한 매우 짧아 33세로 승천하였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 모두가 부인이 한명 이상 이었으며 그것 또한 알라께서 의도하신 가르침이었다.

이브라힘께서는 셋 또는 네명의 부인이 있었으며 야곱 또한 네명의 부인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다. 그리고 무함맏(그분께 평확) 사도께서도 여러명의 부인과 결혼을 하였다. 이러한 모든 분들께서 여러명의 부인과 결혼을 한것은 인간의 동물적 욕구와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당시에 일부다처제의 법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또한 알라에게로 다와를 위한 방법이었다.

여기서 나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여러명의 부인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다음의 두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1) 일부다처제의 허용  

2) 일처 다부제의 금지  

알고 있듯이 알라께서는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고 각자의 본분에 맞게 육신을 창조하셔서, 남성을 여성에게 주고 여성은 그것을 받아 임신을 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여기서 받는 자는 자신이 받는 것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며, 남자가 여자의 자궁내에 정액을 심는 것은 모두가 아는 것이다. 그리고 정액이 여자의 자궁 내에 착상한 뒤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 서서히 아이로서의 형태를 갖추어 간다. 알고 있듯이 한 여자의 자궁내에 많은 남자들이 정액을 남기게 되면 그들 중 누가 임신을 시켰는지 정확히 규명 지을 수가 없게 된다. 진실로 알라께서는 아이의 계보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도록 했지 그의 아버지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도록 하지 않으셨다.

이것 때문에 알라께서는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금하셨다.

이러한 행위를 허용하거나 행하는 자들은 진실로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만약 여러 여자들의 자궁 속에 한 남자가 씨를 뿌린다면 그의 혈통은 결코 섞인것이 아니며, 자식이나 아비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현재의 기독교 사회를 보면 여자가 정신적인 결혼 전에 많은 남자를 만나는 것을 허용한다. 그것은 임신을 낳고 단지 생각만으로 아이의 아버지를 추측하지만 남자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사회에서 많은 사생아들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알라께서 예수에게 내려 주셨던 법에 위배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알라께서 예수께 내려 주셨던 법은 그분 이외의 모든 사도와 예언자들에게 내려 주었던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한 여자에게 많은 남자가 있다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여러 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무함맏 가잘리가 그의 책 피크흐 씨라에서 언급한 것이 흥미롭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여러 명의 여자를 갖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자들에게 읽어 주었다. 왜 남자들이 여러 부인들을 만드느냐 여자들은 여러 남편을 만들지 않는데?

나는 질문을 한 이들 모두가 부정하고 탐욕스럽고 추악한 것을 보았다.

이들의 잘못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남녀가 서로 관계를 갖는 가장 큰 목적은 순결한 상태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남자들이 찾아 오는 여자의 집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여자에게 있어서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갖고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까? 여자의 위치는 임신을 하는 것이지 임신을 시키는 위치가 아니다. 여러 명의 부인을 얻는 것은 오래 전부터 허용되어 왔던 관행이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 처럼 그것이 방법과 명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부인처럼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부인은 오직 한 명이고 나머지 여자들은 간통을 하는 여자 친구일 뿐이다.

진실로 알라께서는 여러 명의 부인을 얻는 것을 허용했지 여자 친구들을 갖는 것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브라힘과 야곱 그리고 다른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생애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무함맏 가잘리가 그의 책 피끄흐 씨라에서 언급하기를, 사회적 법칙과 경제적 충족은 인간 자신들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준비를 하였거나 무지하여 소홀히 하였다면 그 결과는 그들에게 바로 나타난다. 그것은 어떤 남자가 여자를 부양하고 사회적 환경이 무난하냐? 라는 것으로 알수 있다. 만약 무지하여 소홀히 했다면 여자에게 고통과 불평을 안겨 줄 것이다.

여기서 남녀 숫자의 비율에 주목하자 만약 똑같을 수 있고 두 성별 중 한 쪽이 많을 수 있다.

만약 똑같다면 또는 여자의 수가 더 적다면 여러 명의 부인을 얻는 것을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고 올바르게 짝지워지도록 방치하되 자신의 현실과 자신의 몫에 만족하거나 불만을 갖지만 만약 여자의 수가 많다면 다음의 세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한다.

1) 그들 중 적당 수를 죽을 때까지 결혼을 금지시키거나

2) 부인 이외의 여자 친구를 만들어 간통을 인정 하거나 이것은 올바른 종교와 올바른 사회에서 모두 경멸하는 방법이다.

3) 여러 부인을 갖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자에게 남자를 금지시키는 것을 여자들이 원치 않을 것이며 또한 정당하지 않은 침대위의 생활을 여자들은 윈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직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인 일부다처주의가 현명한 방법이며, 그녀의 아이들을 위하여 올바른 계보를 승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들에게 물질적 재산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고 어떤 이는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기본 요소를 많이 상속받은 이와 전혀 그렇지 못한 이 사이에는 평등이라는 단어는 올바르지 않다.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에게는 허락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허락한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반면 만약 부인이 나이가 많거나 아이를 낳지 못 하거나 병들고 약하다면 왜 이러한 결점을 문제삼지 않느냐? 진실로 과거에는 이러한 여인들이 남편의 보호 아래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다른 여자가 와서 부인이 의무를 다했었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그와의 다른 것에 대한 즉 도박과 같은 종류를 즐길 것을 엄격히 금하셨으며 오로지 부인들에게 올바르고 정의롭게 대하도록 하였다,

    (13) 힐풀 알 푸두울

예멘의 자비드의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메카로 왔다. 그의 물건을 알아시 븐 와일이라는 꾸레이쉬의 귀족중의 한 사람이 샀지만 그의 권리를 묵살하고 물건을 가지고 갔다.

그래서 그는 꾸레이쉬 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의 도움 요청은 거절당했다. 그리고 그를 죽이려 해서 그는 메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위해 일어났고 모두들 압둘라 이븐 자드안의 집에 모여서 음식을 먹으면서 그를 위해 알라의 길에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가 그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핍박 받는 사람을 위해 그들이 나서기로 했다. 이 모임을 힐풀 알 푸두울이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 여기 모인 사람들은 선행을 위하여 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알아시에게 갔다.

그리고 알자비디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주장하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댓가를 지불하였고 당시 알라의 사도께서 이일을 행하셨고 계시를 받으신 이후에 말씀하시기를 : 나는 압둘라 이븐 알자드안의 집에서 모임을 갖는 것에 참석하였다. 만약 그 모임이 이슬람이 오고 난 후에 있었다 해도 나는 참석했을 것이다. 그것은 선을 행하고 핍박 받는 사람들을 억압자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당시 알라의 사도께서는 정의와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승리하신 것이다.  

  (14) 카아바의 재건립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아바는 이 땅위에 세워진 최초의 알라의 집이다.

알라께서는 그 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신 이브라힘과 그분의 아들인 이스마일로 하여금 황량했던 아라비아 반도 땅 위에 카아바를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그후 카아바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작용과 노후 때문에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했었고 무함맏 사도님 시대에 홍수로 카아바 한쪽이 기울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재건축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렀다. 메카의 모든 원로들이 모여서 카아바의 재건축에 관하여 토의한 결과 그들은 카아바를 재건축하기로 만장일치로 합의하고 카아바를 철거하고 다시 짓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만약 카아바를 철거하게 되면 알라께서 노여워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이븐 이스학이 말하기를 : 사도님께서 35세에 이르렀을 때 꾸레이쉬 부족들은 카아바를 재건축 하기로 했다. 당시 이 일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지붕을 올리고 다시 벽을 세우고자 했었다.

그때 물라이흐 이븐 아므르 부족의 사람이 제단의 보물을 훔쳤었다.

이븐 히샴이 말하기를 : 꾸레이쉬 부족이 그의 손을 잘랐다. 그리고 꾸레이쉬 부족은 그것을 훔친 자들이 제단에 갖다 놓을 것을 주장하였다.

아부와합 이븐 아므르 이븐 아이드 이븐 압두 이븐 이므란 이븐 마크줌이 그것을 카아바 안에 가두는 것을 얘기했다. 원위치로 돌아갈 때까지 그의 손에서 시작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기를 꾸레이쉬 부족이여 카아바를 짓는 데 청결한 것 외에는 넣지 마라. 그곳에 절대로 불결한 댓가를 들여 놓지 마라. 어떤 부정한 이익이나 폭력에 의해서 얻어진 어떤 것도 들여서는 안된다.

이븐 이스학이 말하기를 : 아부와합은 사도님 아버님의 외삼촌이다. 꾸레이쉬 부족은 카아바를 분할해서

압두마나프 부족과 주흐라 이븐 루아이를 위해 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꾸레이쉬 부족은 그 벽이 무너질까 걱정되어서 새로 다시 건축하였다.

알왈리드 이븐 알 무기라가 말하기를 : 나부터 카아바를 철거하겠다 결심을 하고 말하기를, 주님이시여 우리는 선을 위하여 일하니 노여워 마십시오. 그리고 나서 양 기둥부터 철거하였다. 그날 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말하기를 : 만약에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철거하지 않고 예전의 그대로 카아바를 놔두겠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알라께서 우리의 일을 원하시는 것으로 알고 철거를 하겠다. 다음날 아침 알왈리드는 평상시 처럼 일어나서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와 함께 철거를 시작해 이브라힘이 세웠던 기초가 있는 곳까지 철거하였다. 낙타등 같은 녹색돌 있는 곳까지 도달하자 여러 사람이 그것을 움직였다.

이븐 이스학이 말하기를 : 카아바 철거 작업을 했던 꾸레이쉬 부족 중 한 사람이 쇠지레를 돌 사이 즉 이브라힘이 세웠던 첫 번째 기초 사이에 넣고 들어올리려 힘을 주었다. 그 돌이 흔들리자 그 여파로 메카가 흔들리자 그들은 그 일을 그만 두었다.

이븐 이스학이 또 말하기를 : 꾸레이쉬 부족들이 카아바의 기둥 밑에서 앗시리아어로 된 책을 발견했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 유태인이 와서 그 책을 읽었다. 그 내용은 : 나는 알라로 천지를 창조하는 날 이 메카를 창조하였고 태양과 달을 만들었으며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을 6일 동안 채우셨다. 이곳은 그 백성들에 대한 나의 축복인 물과 라반이 넘쳐서 이곳의 나무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하다.

당시 꾸레이쉬 부족들은 서로 분담해서 카아바 건립에 필요한 돌들을 모았다. 그리고 건축을 시작하여 각자의 위치에서 기둥을 세워 나갔지만 서로 흑석을 올리려고만 했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급기야 전쟁 준비까지 했다. 압둣다르 부족은 그릇에 피를 채우고 아디븐 카압 이븐 루아이 부족과 동맹을 맺어 피를 담은 그릇에 그들의 손을 담그고 혈맹을 맺었다. 꾸레이쉬 부족들은 그 상태로 4-5일이 지나고 난후 마스짇(성원)에 모여서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카아바의 흑석을 제자리에 올려 놓는 일을 하는 일로 서로 적대적이 되었다.

그러나 아부움미야 이븐 알무기라 이븐 압둘라 이븐 오마르 이븐 마크줌이 일어나 말하기를, 꾸레이쉬 부족의 지도자들이여 그일에 대해서 당신들의 의견이 다르니 이 마스짇에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맡기자. 그들은 이 말에 동의 했고 그 사람은 바로 무함맏이었다. 그들이 무함맏임을 알자 말하기를 : 신의가 있는 무함맏 이 사람이야 말로 우리가 원했던 사람이다. 그들의 논쟁이 끝나고 그 소식을 무함맏에게 알리자 무함맏이 말하기를 : 내게 옷을 가져와라.

그에게 옷을 가져다 주자 그는 흑석을 가져다 그 옷 위에 놓고 말하기를 각 부족장들이 옷 한 부분을 잡고 들어 올리시오. 그들이 옷을 들어 올려 흑석의 자리까지 오자 무함맏께서 흑석을 들어 제자리에 놓았다. 이 현명한 판단으로 사도님께서는 사람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막았다.

당시 무함맏 사도님께서 카아바의 재건축에 참여하셔서 직접 돌을 져서 날랐다. 당시 그의 협력은 몸소 실천하는 것이었다.

알 수하일리가 전하기를, 카아바의 건립에 관한 이 이야기가 하디스 솨히흐에 언급되어 있다. 당시 알라의 사도께서 사람들과 함께 돌을 날랐고 당시 사람들은 허리를 감은 천을 어깨에 걸쳐서 돌을 날랐다. 알라의 사도 또한 어깨로 돌을 져서 날랐는데 그의 허리 천은 매우 짧았다.

그때 압바스가 말하기를 : 형제여! 만약 당신의 허리 천을 당신 어깨에 걸쳐서 돌을 나르면 어떠냐? 그래서 그가 그렇게 했지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말하기를, 내 허리 천은 짧다.

그리고 일어나 돌을 그냥 옮겼다. 다른 하디스에서 언급하기를 그가 넘어졌을 때 압바스가 일으키며 묻기를, 무엇 때문에 이러느냐?

그래서 그는 하늘의 부름을 받았었다는 것을 말해 줬다. [무함맏이여! 내가 그대의 허리 천을 짧게 했도다....] 그 소리는 알라의 천사 소리였으며, 알라께서 그를 사도와 예언자로 교육시키기 위한 관심이었다.

  (15) 사도 무함맏의 명상과 은둔 생활

무함맏께서는 어렸을 적부터 신성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우상이나 잡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예배를 드리고 절을 하는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신 알라 이외의 다른 것에게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브라힘(아브라함)의 종교를 선택하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알라를 진실로 경배하고 사람들을 멀리하고 은둔생활을 하면서 알라(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돈독히 하였다. 무함맏께서는 특히 밤에 홀로 명상에 잠기는 것을 자주 하였으며, 그러한 것을 그의 삼촌 아부 딸립이 자주 보았다.

그가 밤에 잠자리에 없어서 그를 부르면 알라를 염원하고 예배드리는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함맏께서는 많은 시간을 알라를 생각하고 혼자서 인간들과 떨어져 명상에 잠겼으며 우상들에게 결코 절을 하지 않았고 술을 마시지 않았다. 알라께서 그를 나쁜 것으로 부터 보호하여 주셨으며 그의 생애에 결코 나쁜 행위가 없이 선하게 살도록 보호하셨다. 그리고 그의 마음이 알라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선행을 하며 언행에 믿음이 가도록 하였다. 그는 메카 근교에 있는 히라 동굴에서 알라에 대한 명상을 하고 알라에 대한 염원을 하면서 그곳에서 지냈다. 그는 이브라힘의 종교를 따랐고 알라에 대한 신앙적 본능을 지켰다.

그는 명상을 끝내고 집으로 갈 때면 항상 카아바의 주위를 일곱 번 또는 원하는 만큼 돌았으며(똬와프) 그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계시를 받고난 후 부터는 더욱 더 알라에 대한 경배에 열중하고 복종하였으며 예배 때 서서 꾸란을 낭송하느라 다리가 부어오를 때도 있었다. 무슬림 하디스에서 자비르가 전하기를 : 알라의 사도께서 메카에 입성하였던 라마단 달에 나섰다. 단식 중이었고 사도께서 목동이 있는 곳까지 가셨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서 물을 마셨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은 단식 중이다. 사도께서 말씀하시기를 : 그들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알라의 사도께서 인간들을 위해 베푸신 자비이다.

알라의 사도께서는 당시 무리하게 건강을 해치면서 하는 단식을 금하셨던 것이다. 이슬람에서는 라마단달에 단식을 의무화했지만 여행 중일 경우에는 음식을 먹도록 했다. 그리고 건강해서 단식을 해도 건강을 해치지 않는 사람들에게 허용했다. 라마단 때 알라의 사도께서 여행 중에 단식을 하고 그분의 교우들은 음식을 먹었던 경우도 있었다.

상황에 따라 단식을 의무로 명하고 또 음식을 허용하셨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알라의 사도께서는 강압적인 분이 아니며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꾸란에 언급하기를(나는 그대를 세상에 자비를 펴기 위해서 보냈다)

오마르의 아들이 전하기를: 라마단 기간이었을 때 알라의 사도께서 단식을 하자 사람들이 단식을 했다. 그러자 알라의 사도께서 사람들이 단식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묻기를, 사도님께서는 단식을 하지 않으십니까? 사도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는 그대들과 같지 않도다. 나는 먹고 마시는 것이다.

또한 아부 후라이라가 전하기를 : 그대들 중 누가 나와 같은가? 나는 주님의 곂에서 잠을 자고 그분께서 음식과 물을 주신다.

그들이 단식을 중단하지 않자 사도님께서 사람들과 단식을 이틀 더 하셨다. 그리고 달을 보면서 말씀하시기를 : 만약 달이 뜨지 않았다면 그대들과 단식을 더 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단식을 멈추지 않은 것에 대한 징벌로 나타났을 것이다. 세상의 쾌락을 숭배하는 것도 아니고 삶의 행복을 포기해서도 안된다.

아부 알자르다이가 말하기를 : 라마단 기간중 매우 더운 날 우리는 사도님과 함께 길을 나섰다. 너무 더워서 우리들 중 손을 머리에 얹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식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사도님께서만 단식을 하셨다. 당시 무함맏 사도님께서는 신앙적 생활을 하면 육신의 평안을 얻고 피곤과 고통을 잊으셨다. 사도님께서 빌랄에게 말씀하기를, 빌랄아! 나는 그것으로 휴식을 갖는다.

그것이란 바로 예배를 가리킨다. 사도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휴식과 평안을 찾으시고 피로와 고통을 잊으셨다.

그것은 알라에 대한 헌신과 복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러 가로되 실로 나의 예배와 내가 바치는 제물과 나의 생명과 나의 죽음 모두가 만유의 주님이신 하나님을 위해서이니라]안암장 162아야(절)

[진실로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의 훌륭한 모범이 있었거늘 이는 하나님과 내세와 하나님을 염원하는 것을 원하는 자를 위해서이니라]아흐잡장 21아야(절)

알라의 사도께서는 그분의 모든 언행이 인간들이 따라야 하는 표상이었다.

꾸란에 언급하기를, [그는 장난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 계시를 받은 말씀이니 강력히 그것을 가르쳤다] 알라의 사도 무함맏께서 계시를 받으신 후 알라에 대한 경배를 가르치고 그분의 삶 그 자체가 가르침이었다.

알라께서는 사도님의 위치를 숭고한 위치로 높여 주시고 그분을 믿고 복종하는 자들의 이맘이며 지도자로 하셨다. 그리고 이슬람 공동체인 움마를 공정하게 운영할 수 있는 규칙을 주셨으며 알라께 진실된 헌신을 하는 필요한 요건으로 물욕과 악덕 그리고 세속적인 욕망으로 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라 하셨다. 알라를 경배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고 이슬람을 따르는 사람들과 올바른 이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알라께 경배드리는 높은 이상을 실현하고 그 규범에 따라야 한다. 그들 모두 알라의 사도님께서 실천하신 규범을 배우고 익혀서 최후의 심판일까지 선과 축복이 넘치며 평화롭고 행복하며 악을 근절하고 알라의 천국으로 가는 승리를 얻어야 한다.  

(16) 사도 무함맏의 계시 시작과 사도로서의 임명

계시를 받기 이전의 무함맏께서는 무명인사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부정하고 사악한 것을 멀리하고 혼자서 은둔생활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많은 시간을 히라동굴에서 지고하신 알라를 경배하는 데 보냈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그에게 가면 관대하게 음식을 베풀어 주는 그의 선행과 그분의 의도와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븐 이스학이 말하기를 : 와합 이븐 카이싼 마울라 알 주바이르가 내게 말하기를 : 압둘라 이븐 알 주바이르로 부터 들었다. 그가 아비드 이븐 우마이르 이븐 까타다 알라이시에게 말했다

오! 아비드여 어떻게 알라의 사도님께 가브라엘 천사가 와서 계시가 시작되었는가?

아비드가 말하기를, 내가 있을 때 압둘라 이븐 알주바이르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알라의 사도께서는 매년 한달 동안 히라 동굴에서 명상에 잠겼었다. 자힐리야 시대에 꾸레이쉬 부족에게는 이러한 풍습이 있었다. 당시 사도님께서 히라 동굴에 한달 동안 은둔 생활을 하실 때 불쌍한 사람들이 그에게 오면 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최초로 사도님께서 집에 들어가시기 전에 카아바 주변을 돌았다. 그는 일곱 번을 돌 때도 있었고 어느 날은 원하는 만큼 똬와프를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당시 사도님의 은둔생활은 주님과 함께였다는 것을 메카 사람들은 알고 있다. 사람들이 그를 원하면 그가 나타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많은 것들을 베풀었다. 언제든지 누구라도 그를 만나기를 원하면 그는 나타나서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결코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그의 은둔 또한 사람들과 함께한 것이었지 홀로 했던 것은 아니다. [.....알라께서 그 분께 관용을 베풀고 그 분께 계시를 내리게 했던 달이 올 때까지 ] 그때가 라마단 달이었으며 알라의 사도께서 라마단 달에 히라동굴로 평상시처럼 했고 그날 밤에 알라께서 그 분께 계시를 내리셨다. 알라의 명령을 받고 천사 가브라엘이 그에게 왔던 것이다.

부카리와 무슬림 하디스에 언급되었다 : 아이샤가 전하기를, 최초 알라의 사도께 계시가 내려질 때 새벽의 여명과 같은 것 이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그 분은 히라동굴에서 은둔하여 명상에 잠기는 것을 좋아 하셨다.

밤에 오랫동안 명상(알라를 염원하고 경배하는)에 잠겼다가 카디자에게 돌아가곤 했었다. 이러한 생활이 그에게 계시가 내려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어느날 그가 히라동굴에 있을 때 그에게 천사가 와서 말하기를 : 읽어라!

내가(사도님) 말했다. :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 읽어라!

내가 말했다 : 그리고 나를 덮고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나서 나를 놔주며 말하기를 : 읽어라!

내가 말했다 : 나는 읽을 줄 모릅니다.

그러자 나를 덮고 세 번째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나서 나를 보며 말했다. [만물을 창조하신 그대 주님의 이름으로 읽어라 그분(하나님)은 한 방울의 정액으로 창조하셨느니라 읽어라 그대의 주님은 가장 은혜로운 분으로 연필로 쓰는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도 가르쳐 주셨느니라]

그후, 알라의 사도께서 매우 떨면서 카디자에게 갔다 그리고 말하기를 : 나를 안아 주시오! 나를 안아 주시오! 그래서 공포가 사라질때까지 그를 안아 주었다. 그리고 나서 카디자가 말하기를 : 무슨 일이냐? 그는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였다. “나는 무척 두려웠다.”

카디자가 말하기를 :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진실로 알라께서는 당신을 나쁘게 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자비가 당신께 이른 것이니 현실을 받아 들이고 모든 것을 참아 내십시오.그리고 진실에 눈을 뜨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를 떠나 그의 사촌인 와라까 이븐 누우팔 이븐 아싸드를 데리고 왔다.

그는 자힐리야 때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랍어를 쓸 줄 알았으며 성경을 아랍어로 옮겨 적었었다. 그는 매우 나이 많고 장님이었다.

카디자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 조카의 말을 들어보시오

그가 말하기를 : 오! 나의 조카여 무엇을 보았느냐?

그래서 알라의 사도께서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와라까가 말했다. : 이것은 모세에게 내려왔던 거대한 모기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몰아 낼텐데 당신이 무사하기를 바란다.

알라의 사도께서 말씀하셨다.: 또는 그들이 떠나게 된다.

와라까가 말했다: 그렇다 당신에게 왔던 그런 사람이 왔던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알 수만 있다면 내가 당신을 도와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

그후 와라까는 바로 사망했다.

이것이 알라께서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로 선택한 무함맏 사도님께 일어난 최초의 계시이다.

그것은 바로 유일신의 종교를 선교하는 시초였으며 지고하신 알라의 명령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어둠속에서 광명의 길을 제시하며 정의가 불의를 물리치고 이기며 타락하고 병든 사회와 어둠과 길 잃은 사람들을 인도하고 억압과 폭정을 버리고 공정하고 바른 길을 제시해 주며 알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알라께서 이러한 인간들을 꾸란에 언급하였다.

[인간의 손이 저지른 부패가 육지와 바다에 만연하였나니] 로움장 41아야(절)

이 다와(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준비 자세와 이슬람적 교육이다. 압둘라의 아들 무함맏께서는 창조주 알라의 선택을 받고 대리인으로서 최초의 선교사이다.

알라께서는 그분을 세속적인 욕심에서 부터 초월하게 하셨으며 정신과 육신을 청결케 보호하셨다. 그리고 당시의 사회에 사랑과 자비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알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유일신 알라께만 경배 드리도록 인간들을 인도하셨다.

당시 사도님의 나이는 40세였으며 예수께서 탄생하신지 610년이 지난 때이다. 마지막으로 온 우주의 주님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 드림니다

1999/3/2